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1차 세계 대전 (문단 편집) === [[참호전]]의 수렁 === [[파일:q5zDazD.jpg]] 더 진격할 수 없게 된 [[서부전선]]의 독일군은 프랑스 방면의 점령지역 유지와 방어를 위해서 참호를 팠고 연합군도 독일의 진공을 저지하기 위해서 참호를 파기 시작한다. 그리고 상대편 참호의 측면으로 계속해서 기동을 되풀이한 결과 끝내 참호선이 북해에서 스위스 국경까지 늘어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제1차 세계 대전의 가장 끔찍한 이미지로 남아있는 '''[[참호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어느 나라에도 참호전이란 교리가 없었으며 의도된 전쟁 양상이 아니었다. 과거 남북전쟁 당시 서부 전역의 [[빅스버그 포위전]], [[피터스버그 포위전]]에서 초기 형태의 참호전이 선보여졌지만 유럽국가들은 산개, 엄폐, 참호를 활용한 남북전쟁에 대해 '''아 그 미국녀석들, 참 촌스럽게 전쟁하네'''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또한 기관총, 야포, 철조망 등 방어에 유리한 무기는 발달했으나 참호 돌파를 위한 효과적인 무기가 없었기에 양측은 효과적인 전진을 하지 못하고 인명피해만 늘어가는 [[소모전]]을 치르며 대치하게 된다. 대전기간 그 어느 쪽도 참호전 양상을 타개하는 데는 실패했다. 의외로 [[러시아 제국군]]이 동맹국을 상대로 참호 돌파를 많이 했었다. 그러나 상대는 독일이 아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었기에 가능한 성과였다. (동부전선에선 참호전을 중요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 서부전선에선 끝없이 이어지는 참호로 요새화 된 지역은 우회해서 돌아갈 길도 없었고, 참호에는 포격도 썩 효과적이지 않았다. 결국 대량의 포격을 적의 참호에 가한 후 정면으로 병력을 돌격시키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러나 적의 기관총과 철조망, 그리고 포격 때문에 아군은 적의 참호에 가기도 전에 전멸하기 일쑤였다. 설사 적의 참호를 점령하더라도 그 앞에는 적들이 준비한 제2, 제3의 참호가 버티고 있었다. [[서부전선]]과 [[이탈리아 전선]]을 제외한 [[동부전선]]이나 [[발칸]], [[캅카스]], [[중동]] 전선에서는 참호전이라고 부를 만한 상황 자체가 없었다. 이쪽에서는 철도와 기병을 동원해 대규모 기동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제1차 대전에서 독일군은 동부전선에 배치되는 걸 선호했다고 한다.] 서부전선과 동부전선의 양상이 판이하게 달라진 이유는 병력밀도가 차이나는 것이 컸다. 서부전선은 전 전선에 걸쳐 병력이 빽빽하게 들어차 병력밀도가 낮은 취약점을 찾을 수 없었고, 결국 참호전이라는 일종의 진지전 양상으로 변모했다. 이탈리아 전선도 마찬가지로 병력 밀도가 높을뿐만 아니라 고지대인 [[알프스 산맥]]에서 전쟁이 벌어졌으므로 대개 참호를 파고 포격을 주고받는 진지전으로 전개되었다. 하지만 동부전선은 [[흑해]]에서 [[발트 해]]까지의 거대한 전선이 형성되다 보니 참호에 의존한 고수방어를 하려다가는 쉽사리 측면돌파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보병과 기병에 의한 [[기동전]] 양상이 벌어졌던 것이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러시아는 프랑스 자본으로 철도를 깔기는 했는데 소총과 포탄조차 부족해 [[https://blog.naver.com/kkumi17cs1013/222556721397|보병에게 도끼라도 줘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에너미 엣 더 게이트]]의 소련군 같이 [[https://blog.naver.com/kkumi17cs1013/221290077831|여려명에게 총 한자루 주고 앞사람이 죽으면 뒷사람이 수거해서 쓰라고 하지 않나]], 서부전선에서 포신이 녹아내릴 때까지 쏴재끼는 동안 10발 쏘고 포병이 침묵하는 막장사태가 곳곳에서 벌여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